[2015년 교회 캠프 주제 1강] 회복을 소원하는 자의 믿음

by 박정일 posted Apr 17, 201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Extra Form
설교자 박정일
성경본문 마가복음 5:12~16

마가복음 5:12~16

 

하나님께서 오늘 저희들에게 수양회 말씀 잔치를 배설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2015년 여름 수양회 전체 주제는 ‘회복’입니다. 하나님과의 회복, 사람과의 관계성의 회복입니다. 이 회복이 우리 개인과 교회 안에 충만해주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한 문둥병자를 고치신 사건입니다. 이 문둥병자는 예수님께 믿음으로 나가서 완전한 회복을 얻었습니다. 어떤 믿음의 자세로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가야함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회복을 위해 필요한 믿음이 어떤 믿음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회복을 기대하고 예수님께 나아가는 자의 믿음이 무엇인 지를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회복을 소원하는 자의 믿음

Part I 영접해 줄 것을 믿음(v40a)

v40절을 보십시오. 한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문둥병으로 번역된 단어는 형용사 ‘레프로스(λεπρος)’인데 '비늘 모양의 , 비늘에 덮힌, 딱지로 덮힌'을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여러 종류의 피부병을 나타내는데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 피부병이 소위 '문둥병'과 동일한 병인지는 논란이 있습니다.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와 디오소리데스(Dioscorides)의 저술에는 이 형용사가 나병환자를 지칭하는 것과 더불어 비늘이 일어나는 피부병을 가진 사람을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

 

이 사람이 나병을 가졌던, 나병과 같은 증상을 가진 피부병을 가졌던 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레위기 13:43~46절은 이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은 그를 진찰할지니 그 대머리에나 이마 대머리에 돋은 색점이 희고 불그스름하여 피부에 발생한 나병과 같으면 이는 나병 환자라 부정하니 제사장이 그를 확실히 부정하다고 할 것은 그 환부가 그 머리에 있음이니라 나병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영 밖에서 살지니라“

 

첫째, 옷을 찢고 머리를 풀어야 합니다.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옷을 찢고 머리를 풀어 재치는 행동은 극도의 슬픔과 애통과 원통의 표현으로서 죽은 자를 애도할 때 많이 나타납니다. 문둥병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었기에 스스로 죽은 자로 여겼던 것입니다.

 

둘째, 사람이 접근해 올 때마다 윗입술을 가리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타메 타메) 외쳐야 합니다. 위생학적 측면에서 병원균의 감염을 막으려는 의도가 있으나, 종교 의식법 상으로는 접촉을 통한 부정함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문둥병자는 의식상 부정한 자로 간주되었으므로 그와 접촉한 자도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곧 문둥병자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부정한 자로 규정되었으므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자신을 들어 내놓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자기를 극도로 비하(卑下)하는 행동을 나타내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병이 있는 동안은 진 밖에서 혼자 살아야 합니다. 보건상의 이유도 있지만 의식상의 의미도 큽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하나님이 임재한 곳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기 때문에 이스라엘 공동체도 거룩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들에게는 부정한 것이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문둥병이 있는 동안에는 이스라엘 공동체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것은 곧 사회적 혜택으로부터의 단절뿐 아니라 종교적인 은혜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진 밖으로 쫓겨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에게 베푸는 모든 축복에서 제외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마 그들에게 육체적 고통과 사회적 단절 이상으로 절망스럽게 하는 것은 언약적 축복으로부터 제외된다는 관념이었을 것입니다.

 

문둥병이나 치명적인 피부병을 가진 자가 하나님의 진 안,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면 큰 처벌을 받았습니다. 죽음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사람들과 격리해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자는 예수님께 나아와 무릎을 끊었습니다. 누가복음 5:12절에 보면 그는 얼굴을 대고 엎드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간청하였습니다. 율법이 말한 규정을 어기면서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는 죽음을 무릅쓰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예수님께 겸손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가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근저에는 예수님께서 어떤 자도 영접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마도 예수님에 대한 많은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부정한 자도 물리치시지 않으시고 고쳐주셨다는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율법을 뛰어넘어 사랑과 긍휼을 베푸는 분이심을 알았을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율법과 죽음을 무릅쓰고 예수님께 나올 수 있는 용기를 공급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자도 영접해 주십니다. 어떤 죄인도 사랑으로 영접해 주십니다. 세계적인 애창곡이 된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태어난 배경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26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를 싣고 미국으로 가는 노예선의 선장이며 노예 상인이던 영국인 존 뉴턴은 1748년 5월10일 항해 중 거센 풍랑을 만나 배가 침몰의 위험에 처하자 하나님께 매달리며 구원을 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뉴턴은 크리스찬으로 개종한다. 그 후 몇 년간 그는 노예 사업을 계속했으나 결국 노예 상인 생활을 청산하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뉴턴은 그 후 누구보다도 앞장서 노예제도에 반대하게 된다. 나중에 목사가 된 그는 자신을 구해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작사한다. 방탕하고 부도덕한 노예 상인이었던 자신과 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하고 찬양한다는 내용인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 널리 애창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회개하고 예수님께 나오는 모든 사람을 영접해 주십니다. 결코 내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께 나오는 자는 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Part II 메시아를 고백하는 믿음 (v40b)

예수님께 나온 나병 환자의 고백이 어떠합니까? 40b를 보십시오. ‘주께서“ 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주는 영어에 ’you’이지만, 이 사건을 다루는 다른 복음서, 마태복음 8장2절과 누가복음 5장12절에 보면 대문자 ‘Lord’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문자 Lord’ 히브리어로 ‘야훼’라는 이름은 언약적 성격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이 나병환자가 예수님을 ‘Lord’라고 고백했다는 사실은 예수님이 구약에 오리라고 예언된 메시야, 구세주임을 믿고 고백한 것입니다.

 

예수님께 나온 자들이 다 ‘Lord’라고 예수님을 부른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선생님, ‘랍비’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아주 현명하고 학식이 높고 지혜로운 사람을 호칭할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3장 2절에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랍비라고 불렀습니다.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이는 그의 예수님을 향한 그의 신앙 상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인간 중에서 뛰어난 분이라고 여기고 있었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가 어찌 영적인 것을 이해할 수나 있었겠습니까?

 

이 나병 환자는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 믿음이 가능했을까요? 마태복음 11:2~4장에 보면 침례자 요한이 예수님이 진정한 오시기로 약속된 메시아인지를 그의 제자들을 보내 묻고 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우리가 복음서에서 기적, miracles를 배우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어떤 이들은 예수님이 기적들을 행하였으니 우리도 기적을 예수님의 능력으로 행하자고 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예수님의 기적의 사건들이 단지 교본일 뿐입니다. 우리가 복음서에서 기적의 사건들을 배울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것이 sign“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라는 사인으로서 기적을 베푸신 것입니다.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는 기적들을 베푸신 분이 누구신가? 깊이 생각할 때, 이 기적들은 sign이 되어 우리를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고백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복음서에서 기적의 사건을 배우는 목적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 나온 자도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들의 사건들을 들었을 것입니다. 이 사건들이 sign이 되어 이 사람의 마음에 예수님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 됨을 믿는 믿음이 생겼을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만이 죽은 자를 살리시는 기적을 행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우리 인생에 ‘Lord’ ‘주‘이십니다. 이 분은 구약 성경에 예언된 ’메시야’ 입니다. 이 고백의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갈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Part III 권능을 믿는 믿음(v40b~45)

‘주께서 원하시면 나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본문에 예수님께 나온 자는 예수님께서 신적인 권능을 가지고 계심을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면 그 어떤 자도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겸손한 자세로 예수님께 긍휼을 구했습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 무엇입니까? 4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그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불쌍히‘란 단어는 애간장이 끊어질 것과 같은 아픔을 표현한 단어입니다. 예수님은 불쌍히 여기는 사랑의 마음으로 그를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 나아가는 자는 예수님의 권능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v43~45절을 보십시오. 신적인 권능으로 나병환자를 고치신 예수님은 그에게 엄하게 명하셨습니다. 제사장에게 가서 증거를 삼으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제사장이 판단해 그가 다 나으면 제사장은 그가 완치된 것을 확인해 주고 다시 공동체로 받아들입니다. 이를 통해 그는 다시 사랑하는 가족, 공동체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일원으로 돌아갈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병 환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과 간에, 사람 간에 진정한 회복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번 수양회 주제는 ‘회복’이라고 서두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회복을 이루기 위해 어떤 믿음이 필요한 가를 나병 환자의 육적, 영적 회복 사건을 통해 배웠습니다.

 

오늘 우리들 속에 어떤 나병과 같은 죄악이 있습니까? 어떤 생각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 죄의식을 가지게 하고 사람을 불신하게 만드는 것입니까? 문둥병은 위생학적으로 좋지 않은 기후나 환경에 있을 때 발하게 됩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징벌의 도구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구약시대 사람들은 문둥병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왜 문둥병이 발하게 하셨는지 살펴보는 것은 영적 교훈 차원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첫째로, 우상숭배가 신앙을 병들게 합니다. 아사랴 왕은 우상을 숭배하다가 하나님의 징계로 문둥병이 들렸습니다 (왕하15:1-5). 유다 왕 아사랴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지만 산당을 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산당에서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치셨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우상숭배로 인하여 광야에서 쓰러졌습니다 (고전10:5-7).

 

둘째로, 교만이 신앙을 병들게 합니다. 웃시야 왕은 교만하다가 문둥병이 들렸습니다 (대하26:14-21). 유다왕 웃시야가 나라가 강성해지자 마음이 교만해져서 율법을 어기고 자신이 직접 성전에 들어가 분향단에 분향했습니다. 제사장 아사랴가 80명의 제사장을 데리고 가서 분향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만 할 수 있다고 하면서 막으려 하자, 웃시야가 분향단을 잡으려 하면서 노를 발했습니다. 그 순간 이마에 문둥병이 발했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도 바벨론이 강성해지자 마음이 교만하여져 바벨론에 대해 네가 했다. 나의 것이다. 나의 영광을 드러내겠다 는 망령된 말을 하다가 망했습니다 (단4:28-33).

 

셋째로, 욕심이 신앙을 병들게 합니다. 게하시는 탐욕 때문에 문둥병이 들렸습니다 (왕하5:20-27). 아람 장군 나아만이 엘리사 선지자에게 문둥병을 고침받았습니다.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사례를 했으나 엘리사는 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겠기 때문입니다. 나아만이 돌아갈 때에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뒤따라가서 거짓으로 엘리야가 생도 둘을 보내어 사례를 받아 오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게하시는 나아만으로부터 은 한 달란트와 옷 두벌을 받아 와 집에 감추었습니다. 그 사실을 안 엘리사가 나아만의 문둥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고 저주하자,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 나올 때 문둥병이 눈같이 발하였습니다. 아간도 욕심 때문에 이스라엘이 여리고 성 정복할 때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시날 산 외투 한벌과 은 200세겔과 금 50세겔을 훔쳐서 장막 아래 감추었다가 하나님의 색출에 의해 돌로 처형 당했습니다 (수7:19-26).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탐심 때문에 하나님께 드리기로 약속한 밭 값 절반을 감추었다가 베드로의 저주에 의해 죽음을 당했습니다 (행5:1-11).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개인적인 육욕이 들어가서는 안됩니다.

 

넷째로, 비방이 신앙을 병들게 합니다. 미리암은 비방하다가 문둥병이 들렸습니다 (민12:1-10).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한 일로 인해 미리암이 아론과 함께 모세를 비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만이 아니라 자신과 아론에게도 말씀하신다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하는 일을 부정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책망하시고 진노하시니 미리암의 이마에 곧 문둥병이 발했습니다. 광야시대에 고라당도 모세를 대적하여 거스리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임을 당했습니다. 250명의 고라당은 땅이 입을 벌려 삼켰고 회중들에게는 염병이 돌았습니다 (민16:1-50)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보다 나를 더 들어내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까?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은 없습니까? 내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고 시기하며 질투하며 비방하는 죄를 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런 죄들이 영적인 나병입니다. 이 나병이 하나님과 나를, 이웃과 나를 분리시키는 죄임입니다. 이를 죄를 가진 자가 나병 환자와 방불한 자입니다. 예수님께 우리의 나병을 겸손히 아뢰고 믿음으로 나가야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오늘 세 가지를 배웠습니다. 첫째는 영접해 줄 것을 믿는 믿음, 메시야를 고백하는 믿음, 마지막으로 권능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이 시간 이 믿음이 우리 속에 강력하게 역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나병 환자와 같이 낫고자하는 소원으로 충만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자를 예수님께 영접해 주십니다. 이 믿음을 가진 자를 영적으로 구원해 주십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자의 현실의 문제를 도와주십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시고, 사람간의 어려움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이 회복의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TAG •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