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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박정일
성경본문 요한복은 21:15~17

본문: 요한복음 21:15~17

2017년 신년 말씀

 

2017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모두가 다사다난했던 2016년을 보내고 새로운 방향과 각오로 2017년 시작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쁨과 설렘으로 새해를 기다립니다. 어떤 이들은 거리에서 축제를 즐기며 새해를 기다리는 분들도 있습니다. 조용한 곳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며 차분히 새해의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저희들은 2017년을 맞이하면서 말씀을 듣고, 말씀에 기초해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운 방향과 기도제목을 생각해 봅니다.

 

이 시간 저는 내면의 감정적 침체를 경험하고 있던 자를 찾아오신 예수님의 사랑을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이 예수님의 사랑이 어떻게 한 사람을 실패의 자리에서 일어나게 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 진정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사랑의 무엇인지를 배우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의 말씀의 제목은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사랑

 

PART I 자신을 돌아봄(v15)

21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 일들 위에” 이 일들은 어떤 일들은 말합니까? 21장은 요한복음을 마감하는 장입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이루신 일들을 기록한 후에,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좁은 의미로 볼 때, 이는 예수님의 부활 이후의 행적들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장에는 예수님의 부활이 자세하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제자들은 예수님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20장 22~23절에서 제자들에게 성령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또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도마에게 손수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을 만지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일들 뒤에 베드로와 제자들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20장 2절에 보면 시몬 베드로, 도마, 나다나엘, 야고보와 요한, 다른 두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3절에서 “나는 고기 잡으러 가노라”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활을 보고 경험하였습니다.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제자의 삶을 살기보다는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고자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실패한 자신을 깊이 생각해 보았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사명도 제자들과 함께 받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떨쳐 버릴 수 없었던 것은 실패의식이었습니다. 자신이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였던 자라는 자책이었습니다. 이제는 도저히 예수님의 제자의 삶을 살 자신과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내면적 고뇌와 갈등이 그를 다시 고기 잡는 어부의 삶으로 돌아가고자 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고뇌와 갈등이 있습니다. 비록 예수님 안에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완전한 성화를 이루기 전까지 많은 실수를 하게 됩니다. 때로는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습니다. 이로 인해 인간관계의 치명적인 손상을 가져옵니다. 순간순간 반복적 죄의 습관에 넘어집니다. 이런 상황은 우리를 자책으로 인도합니다. 또한 지난 한 해를 돌아볼 때,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음이 우리를 낙심하게 합니다. 믿음 없음과 자신의 능력 없음을 탓하게 만듭니다. 이런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아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더 자신이 없습니다. 실패와 좌절을 깊이 맛본 후에, 자신의 연약함과 죄의 본성을 직면할 때 도저히 소망을 가질 수가 없기 때문에 포기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베드로의 이런 내면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원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세 번을 예수님을 부인하였습니다. 이는 예수님에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동료들에게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을 부인한 것은 자신들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베드로 자신에게는 이 문제는 큰 문제였습니다. 도저히 스스로에게도 용서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내면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자신의 한계와 연약함의 실상에 직면한 베드로를 너무도 잘 이해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이런 베드로를 어떻게 도와 주셨습니까? 15절을 보십시오. “요나의 아들 시몬아” 시몬은 베드로가 예수님의 구원 받기 전의 이름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은 16:18절에서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라고 말씀하시며 그의 이름을 개명해 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예수님께서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요나의 아들 시몬아”에 담긴 예수님의 의도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시몬”이라는 이름을 통해 과연 “네가 어떤 자였는가?”를 상기시켜 주려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구원 받기 전의 베드로의 삶은 어부였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살던 자였습니다. 잡힌 고기의 양에 일희희비하며 살던 자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베드로를 소망 가운데 부르셨습니다. 물고기 잡던 어부가 아닌 사람을 자로서의 키워가셨습니다. 아무 희망 없이 물고기 잡던 시몬의 삶에 찾아오셔서 소망을 주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죽는 날까지 자신이 과거 어떤 자였는가를 잊지 않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1“13 ”내가 전에는 신성 모독하는 자요, 핍박하는 자요, 해를 끼치는 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얻게 됨은 내가 믿지 아니하는 가운데 알지 못하고 그것을 하였기 때문이라.“ 이 시간 우리도 이 예수님의 질문에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 밖에 있었을 때, 진정 어떤 자였는가를 깊이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베드로를 회복시키는 예수님의 출발점이 이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계속해서 15절에서 질문하십니다. “네가 이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것들은 무엇입니까? 이는 아마도 베드로가 잡은 물고기, 그물, 배 등일 것입니다. 이를 좀 더 넓혀서 생각해보면 세상적인 것들이 것입니다. 돈과 명예, 직위 등일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의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이 가진 직업을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고 사는 문제가 그를 두렵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려고 가르치셔야 했습니다. 과거 그는 예수님의 우편 자리에 앉겠다며 다른 제자들과 ‘누가 크냐며?‘ 다투던 자였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세상적인 야망을 가졌던 자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낮아서 섬기는 자가 큰 자임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것들보다”란 구절들을 사용하셔서 베드로에게 “너는 어떤 자였는가?” 질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질문을 통해 베드로가 소망 없던 죄인이었음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살면서도 여전히 죄악 된 본성을 따라 살 수 밖에 없었던 자였음을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PART II 자신을 인정함(v16)

16a절을 보십시오. “다시 두 번째 그에게 이르시되,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그가 그분께 이르되, 주여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매” 이 구절에서 우리는 베드로가 예수님의 질문에 다른 단어와 다른 시제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이라는 단어로 그리스어 “아가페”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이에 대한 베드로의 대답은 “필레오”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리스어에는 사랑을 표현할 때, 다섯 단어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필레오“는 동료와 친구들 사이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친밀감을 가지는 사랑을 말합니다.”아가페‘는 신적인 사랑으로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무조건적인, 초월적 사랑을 의미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아가페”로 사랑할 수 없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단지 “필레오”와 같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인정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베드로가 사용한 시제입니다. “주께서 아시나이다”에서 쓰인 시제는 완료시제입니다. 과거의 어떤 시점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시간을 완료시제로 표현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자신의 마음을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다 알고 계심을 인정했습니다. 과거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베드로의 마음, 예수님을 이 땅에 오신 메시야로 인정할 때의 베드로의 마음, 그리고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때의 베드로의 마음, 그리고 이제 지금 현재 자신의 마음을 예수님께 다 알고 계심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여기에 쓰인 “아시나이다”의 시제는 현재진행형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질문을 받은 그 순간, “필레오”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솔직히 고백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 베드로는 이렇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26:33 “베드로가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로 인하여 실족하질지라도 나는 결코 실족하지 아니하리이다. 하매” 여기서 그는 “모든”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아니하리이다”라는 시제는 미래시제입니다. 이 베드로의 단어와 시제 선택을 볼 때, 베드로는 모든 사람이 실패하더라도 자신은 결코 실패하지 않으리라는 자신감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두 번째 질문에는 베드로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도록 돕고자 하는 의도를 알 수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잘못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실수하고 넘어질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자책한다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회복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연약함과 죄악 된 본성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PART III 예수님을 바라봄(v17)

1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크게 근심하였습니다. 여기서 “근심하다”의 의미는 마음의 깊은 슬픔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이 질문에 베드로의 내면에 극심한 슬픔이 일어났습니다. 이는 베드로가 자신이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음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 세 번 질문하고 계심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한 번도 아닌 세 번이나 치명적인 실수를 했습니다. 예수님은 세 번이나 베드로에게 사랑 고백을 하게 하십니다. 이를 통해 베드로의 실수를 이미 용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세 번째 질문에서 우리는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십니다. 히브리서 4:15 “우리에게 계신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되 죄는 없으신 분이시니라.” 예수님은 이런 우리의 연약함과 죄 때문에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사야서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길을 잃고 각각 자기 길로 갔거늘 주께서는 우리 모두의 불법을 그에게 담당시켰도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베드로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실패의 자리, 좌절의 자리, 절망의 자리에서 당신은 누구를 바라보고 계십니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자신을 바라보지 말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모든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도록 돕고 있습니다. 세 번 부인한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사랑 고백을 하신 예수님은 베드로의 모든 죄책감과 좌절과 낙심을 치유하신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베드로를 회복시킨 예수님은 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또한 요한은 19절에서 베드로가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낼 것인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명을 먼저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들어낼까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런 것들은 예수님을 사랑할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부산물입니다. 이것이 주가 아닙니다. 주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은혜를 알 때, 참 된 헌신과 열매는 맺어지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고백을 통해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9~10 “나는 사도들 중에서 가장 작은 자니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불리기에 합당치 못하되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지금의 내가 되었으니 내게 베푸신 그분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그들 모두보다 더 많이 수고하셨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화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과거 자신이 어떤 자였던 지를 깊이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구원 받기 전에 자신이 어떤 자였으며,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가 어떤 자였는지를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둘째로, 자신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자임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겸손히 자신이 이번뿐만 아니라 앞으로 계속해서 이런 허물과 죄의 허물을 남길 수밖에 없는 자임을 인정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나를 용서해 주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가 예수님이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사랑입니다.

 

2017년을 시작하면서 우리 교회의 방향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막연하게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자신이 어떤 자인지를 깊이 깨닫는 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연약함과 죄악을 말씀을 통해 발견하는 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주님 앞에 겸손히 회개하는 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실천하는 온 교회가 되기를 주 안에서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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